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찰스 브론슨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에 걸쳐서 생활한 [[립카 타타르]]의 후손. 그래서 동양인스러운 외모를 풍긴다. 이민자 집안의 15남매 중에 11번째로 태어나 유년기에 탄광에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았다. 찰스가 배우로 데뷔한 이유도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함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. 1943년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한창일때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에 지원하여 [[B-29]]의 후방 사수로 복무하였고, 1945년에는 제39폭격단 소속으로 일본 본토를 상대로 전투 임무를 수행하였다. 총 25회의 임무를 수행했고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[[퍼플하트(훈장)|퍼플하트]] 훈장을 수여받았다. 이후 상병으로 종전을 맞는다. 브론슨이란 이름은 [[파라마운트]] 영화사 입구의 '브론슨 게이트'에서 따왔다. 당시 [[냉전]] 시기여서, 영화사 측 사람 권유로 [[소련]]의 느낌이 나는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. 데뷔 초에는 단역을 전전하며 주목을 받지 못했다.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[[베라크루즈]]라든지 여러 영화에서 나오던 그는 [[로저 코먼]]의 58년작 《기관총 켈리》에서 주연을 맡거나, 《밀랍인형의 집》에 나오다가, 《[[황야의 7인]]》에 출연하고 이후 [[세르조 레오네]] 감독의 《[[옛날 옛적 서부에서]]》에서 [[하모니카]]를 음산하게 연주하는 과묵한 총잡이 역할로 주목받았다. 《[[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]]》가 유럽 여러 국가들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되고 그는 [[알랭 들롱]]의 초청으로 유럽에 진출해서 유럽 영화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, 이 무렵 [[콧수염]]도 기르면서 개성을 표출하며 유럽에서의 인기가 미국에까지 전달된 덕분에 그는 1971년 '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'로 선정되기도 했다. 유럽에서는 [[알랭 들롱]]과 친하게 지냈는데 친하게 된 것은 1968년작 《아듀 라미》나 1971년작 서부극 《레드선》에서 함께 연기한 덕분이다. 미남과는 거리가 먼 외모였으나 탄탄한 근육질 몸과 과묵한 모습의 개성있는 외모로 당시 [[험프리 보가트]], [[스티브 맥퀸]], [[제임스 코번]] 등과 함께 [[터프가이]] 배우의 대표자로 꼽혔다. 실제로 당시 대중들에게 [[로버트 미첨]], [[스티브 맥퀸]]과 서로 이미지 비슷하다고 자주 엮였다고.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다. 70년대 인기 코미디언 [[남보원]]이 '찬손 부르튼손'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브론슨의 흉내를 내기도 했다. [youtube(-Y3Nun8B_c0)] 1970-80년대에 일본에서도 인기스타여서, 스크린이나 로드쇼 잡지에 자주 나왔다. 일본 화장품 회사 단초(단학)의 남성화장품 만담(Mandom)의 모델[* [[오바야시 노부히코]] 작품이다.]을 하기도 했으며, 단초의 국내판인 [[더 샘|쥬단학 화장품]]의 동일 제품 광고에서 웃통을 벗고 조각같은 근육질 몸을 자랑하며 "음~맨담" 이라는 대사를 쳐서 당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. 외국 광고를 들여온 것이지만 외국인 유명 배우 모델은 드물던 때 일이다. 유럽인같지 않은 외모로 《[[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]]》를 비롯한 초창기 출연작에서는 [[아메리카 원주민]]으로 많이 나왔다. 또한 묘하게 [[최민식]]과도 닮았다. 실제로 《[[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]]》이라는 책에서는 《[[올드보이(2003)|올드보이]]》의 오대수에 대해 뻗친 머리 가발을 쓴 찰스 브론슨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. [* 그외 배우 [[황정민]]도 닮은 부분이 있다.] 무뚝뚝한 브론슨은 [[유부녀]]였던 여배우 질 아일랜드와 사랑에 빠졌을 당시 남편이었던 영국 배우 [[데이비드 맥컬럼]][* 누구냐면 NCIS의 '덕키' [[도널드 말라드]]를 맡은 바로 그 배우이다. 60년대 첩보물 [[나폴레옹 솔로]] 시리즈에서 일리야 클리아킨으로도 이미 알려진 배우.]을 찾아가 "당신의 아내와 결혼하겠다"며 짧게 통보한 일화가 유명하다.[* 당시는 찰스 브론슨 역시 이미 본처와 별거하던 시점이었다.] 두 사람은 《[[대탈주]]》에 출연하면서 친해졌는데, 매컬럼이 바빠서 브론슨에게 임신한 아내를 자기 대신 방문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. 처음에는 아일랜드는 못생긴 브론슨을 반기지 않았지만 점차 친해지게 되었고, 매컬럼이 바람을 피우면서 이혼 후 브론슨과 결혼했다. 후일, 매컬럼은 자기 자식 3명을 차별하지 않고 키워준 브론슨이 고맙다고 말했고, 경조사에도 참여할 만큼 브론슨-아일랜드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. 브론슨은 아일랜드와 20여 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으나, 1990년 아일랜드가 [[유방암]]으로 사망한 후 77세이던 98년 5월 36세인 3번째 부인 킴을 만나 12월에 결혼했다. 브론슨은 두 번의 결혼에서 자녀 넷-첫 부인과의 사이의 1남 1녀, 두번째 부인과의 사이의 1녀, 나머지 하나인 1녀는 두번째 부인과 함께 입양-을 두었으며, 킴과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. 그리고 상술했듯이 두번째 부인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3남(하나는 전남편과 함께 입양)을 돌봤다. 브론슨이 2001년 [[알츠하이머 병]]에 걸리고 삶의 마감을 앞두자 세 번째 부인 킴과 첫째 부인 해리엇, 그리고 자녀들 사이에서 브론슨의 재산-약 600억 원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한다. 그리고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. 향년 82세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